작성일 : 09-11-04 16:54
[아동글모음] 유치원 뜰에서의 소원
 글쓴이 : 최고관…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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외손자가 올해 처음으로 유치원생이 된다. 유치원은 학교보다 입학식이 좀 늦어 이달 중순이나 돼야 다니기 시작할 모양인데도 벌써 유치원생 티를 내려 든다.

어 린 것도 수속을 끝마치자 곧 소속감을 느끼는 것 같다. "어디 다니지"하고 물으면 웃음이 비적비적 나오는 입으로 목청것 유치원 이름과 반 이름을 댄다. 녀석의 반은 민들레반이란, 나도 녀석한테 민들레반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는 비적비적 비어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.

내가 아직 젊은 엄마였을 적, 처음 중학생이 된 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. 그때만 해도 중학생이 되자마자 머리를 박박 깎았고, 모양보다는 오래 입힐 요량부터 하고 산 새까만 교복은 온몸에서 헐렁하게 겉돌아서 도무지 볼품이라곤 없었다. 그래도 나는 교복에서 반짝이는 금빛 단추가 꼭 민들레꽃 같다고 생각하면서 소녀처럼 가슴을 울렁거렸었다. 지금까지도 그때 생각만 하면 쉽사리 명랑해지는 버릇이 남아있을 만큼 그 때 내 마음 속에 피어난 민들레꽃은 곧 기쁨이요 희망이었다.

어제는 시장 갔다 오는 길을 좀 돌아서 손자가 장차 다닐 유치원 마당을 괜히 한번 서성이다가 왔다. 아직 입학식이 있기 전이라 유치원 안에선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. 혹시 누가 있대도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. 나는 마당에 있는 빙빙 돌아가는 놀이틀을 손으로 돌려 보았다. 겨우내 쉬느라 녹이 슬었는 지 삐그덕 소리를 내면서 힘겹게 돌아갔다.

유 치원에서 무엇을 가르칠까, 막연히 불안했다. 나는 아이를 여럿 길렀지만 유치원 경험은 하나도 없다. 유치원 못 보낸 걸 유감스러워하기보다는 가끔 주책없게도 자식 자랑이 하고 싶을 때는 유치원 안 보내도 공부만 잘 하더라고 으스탤 정도로 그걸 자랑스워하기까지 했었다. 그러나 손자를 유치원 보내는 걸 말리진 않았다. 예전 아이들처럼 형제가 많지 않으니 또래끼리 사랑의 방법을 익힐 만한 데를 가정 밖에서 구하는 건 어차피 불가피한 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. 나는 내가 유치원에서 바라는 게 또래끼리의 어울리는 법과 공중|도덕|어린이다운 예절 등 극히 소박한 사람 노릇의 초보일 뿐이라는 게 되레 불안했다. 더 많은 걸, 더 지나친 걸 가르칠까 봐서였다. 사랑을 가르치기 전에 적의(敵意)를, 화해를 가르치기 전에 경쟁을, 공중도덕을 가르치기 전에 이기는 편법을, 신발을 바로 신는 법을 가르치기 전에 알파벳을 가르칠가 봐서였다.

유치원 뜰은 동네 아이들에게 개방된 듯 두 어린이가 손을 잡고 들어왔다. 아직은 겨울 날씨여서인지 아이들은 둘 다 두꺼운 털 코트를 입고 얼굴엔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. 어린이의 순결한 눈동자를 무엇에 비길까. 마스크 때문에 얼굴이 거의 다 가려지고 눈빛만 강조된 그 아이들의 표정은 흡사 등불 같았다. 나는 아이들에게 말을 시키고 싶었지만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.

너 여자니 남자니

이 렇게 물으려다 말고 그 질문의 어릭석음에 스스로 질려서 입을 다물었다. 아이들이 그네를 탔다. 그네도 겨우내 쉬었는 지 삐그덕 소리가 났다. 그러나 곧 그 삐그덕 소리조차 새소리처럼 즐겁고 경쾌해졌다. 아이들도 몸에서 열이 나는 지 코트를 벗고 마스크도 벗었다.

마스크를 벗은 아이들의 볼은 너무도 예뻤다. 그때까지도 나는 그 아이들이 그렇게까지 예쁘게 생긴 아이들인 줄은 몰랐었다. 흡사 과수에 매달린 채 구질구질한 봉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농익은 과실에서 봉지를 벗겨냈을 때처럼 그 아이들의 아름다움은 놀랍도록 싱싱했고 새삼스러웠다.

나는 그 예쁜 아이들에게 그곳의 놀이틀이 너무 초라한 것 같아 괜히 미않졌다. 놀이틀은 겨울 동안 녹슬고 먼지 앉아 아이들의 몸과 옷을 더렵혀 줄 뿐 아니라 안전까지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방정맞은 생각도 들었다. 놀이틀뿐 아니라 유치원 안의 시설도, 그 옆의 국민학교의 시설도, 눈에 보이는 시설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이 땅의 제도나 풍습도 그 아이들에 비해선 어딘가 미덥지 못하고 부실해 보였다.

아이들의 아름다움이 곧 최상의 것을 가질 자격처럼 보이니까 모든 게 다 부족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.

아 이들이 보고 있을 때처럼 우리 나라가 참으로 잘 돼야 할 텐데하는 나라 근심이 기도처럼 순수해질 적도 없다. 우리의 발전이 놀랍고 앞으로 잘 되리란 칭송은 나라 안팎에서 자자하지만 그런 소리중엔 얼마든지 아첨꾼이나 이해에 얽힌 장사꾼의 소리도 섞여 있을 수 있다. 하지만 아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임금님은 벌거숭이라고 외칠 수 있는 겁없는 정직성을 지녔다고 생각할 때 한결 더 아이들 눈치가 보인다.
[골찌에게 보내는 갈채 중에서 - 박완서, 1998]

 
   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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